단무지가 여는 마당
사이에서 배우고, 질문하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 대하여
Heesung Hwang
Oct 20, 2026
김밥연구소에 두 편의 글을 먼저 올렸다. 이제 조금씩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그런데 그 전에, 잠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연구해 왔는지, 그리고 사람과 공동체를 바라볼 때 어떤 연구 방법과 프레임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소개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연구소에서 나는 ‘단무지’다. 본업으로는 신학을 가르치고 교육과 공동체를 연구한다. 특히 이민자의 삶과 정체성, 아시아계미국인의 경험, 다음 세대의 신앙과 교육,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와 전통 사이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지에 오래 관심을 가져왔다. 돌이켜 보면 나의 연구에는 늘 여러 ‘사이’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 사이, 이민자 부모와 자녀 세대 사이, 교회와 사회 사이, 전통과 변화 사이,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기대 사이이다.
내가 연구에서 중요하게 사용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마당(Madang)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집에서 마당은 단순히 집 앞에 남겨둔 빈터가 아니었다. 일을 하고, 손님을 맞고, 놀고, 의례를 치르고,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등 필요에 따라 다양한쓰임을 받아들이는 공간이었다. 또한 집 안과 바깥을 연결하는 매개 공간이기도 했다. 실제 마당이 점차 줄어든 오늘날에도 ‘마당’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공간을 가리키며 살아 있고, 그 정신은 공공 공간이나 온라인 공간으로도 확장될수 있다.
나에게 마당은 단순한 장소의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언어와 기억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함께 질문하고,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나의 연구는 특히 한국계 미국인 다음세대가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이에서 살아가며 겪는 정체성의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이들은 가정에서는 부모 세대의 문화와소통 방식을 만나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주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을 개인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다. 교육은 부모와 공동체, 그리고 배우는 사람자신이 함께 감당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한 사람이 분열되지 않은 온전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교육을 이미 정해진 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할 수 있고, 공동체가 축적해 온 지혜와 대화하며, 신앙의 언어와 실제 삶의 현실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일에 가깝다고 본다. 내가 제안해 온 마당 접근법(Madang approach)은 바로 그러한 해방적 교육의 공간을 지향한다. 그곳에서는 어린이와 어른, 가르치는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 질문하고, 신앙과 텍스트와 현실의 삶을 함께 논의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마당은 사람을 치유하고 다시 힘을 얻게 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깊게 하고, 작은 자리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나는 오래도록 여러 ‘사이’에 머물러 왔고, 그 사이마다 이런 마당 하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경험, 언어와 기억이 만나고, 하나의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를 덮지 않은 채 각자가 말하고 듣고 질문할 수 있는 자리 말이다.
마당의 좋은 점은 누구에게나 같은 자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한가운데에서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가장자리에 앉아 오래 듣는다. 누군가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고, 다른 날 다시 돌아온다. 중요한 것은 모두를 같은 생각으로 모으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잃지 않은 채 함께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밥연구소에서도 나는 하나의 마당을 열고자 한다. 그 마당에는 이민자의 삶과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 여성의 경험과 다음 세대의 목소리, 교육과 신학, 인종과 젠더, 교회와 사회, 리더십과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놓일 것이다. 서로 쉽게 합의되지 않는 이야기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질문도 기꺼이 가져오고 싶다. 하나의 정답으로 서둘러 정리하기보다, 각자의 경험이 충분히 이야기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의 생각을 흔들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 두고 싶다.
단무지가 여는 마당은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맛을 잃지 않은 채 만나고, 질문을 나누며, 함께 머문 만큼 조금씩 달라져 돌아가는 곳이었으면 한다. 나는 그 마당 한편에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필요한 순간에는 단무지답게, 새콤달콤하고 신선하고 맛있는 질문을 보태며,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더 넓은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고자 한다.

출처
Heesung Hwang, Reframing Christian Education for a Global Generation (Pickwick Publications, 2024), 특히 Introduction의 “Theoretical Frameworks for the Madang Approach.” 나는 이 책에서 한국계 미국인 다음 세대의 신앙·정체성 형성을 위한 안전하고 열린 공간으로서 Madang을 제안하며, 이를 공동체의 나눔과 성장, 해방적 교육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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