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 worth questioning, culture worth keeping, community worth building, belonging worth fighting for.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

Sam Kim

Sam Kim

2026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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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LGBT·한인교회·성소수자·한인교회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도사님, 저 같은 사람도 교회에 와도 될까요?”
“응? 너 같은 사람이라니?”
“저, 사실 게이예요.”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인턴십을 위해 애틀랜타에 잠시 머물고 있던 청년이었다. 인터넷에서 Korean American 교회를 검색하다가 집에서 가까운 우리 캠퍼스 교회를 발견했고, 그렇게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몇 주 동안 꾸준히 예배에 나오던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청년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저 같은 사람도 교회에 와도 될까요?”

나는 그가 사용한 “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마음 아팠다.

그 짧은 말 속에 청년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을 교회에 올 수 있는 사람과 올 수 없는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세워 놓고 있었다.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낸 뒤에도 공동체에 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그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아마도 청년은 몇 주 동안 우리 공동체를 살펴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떤 설교를 하는지,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교회가 내세우는 “the first progressive Korean American campus church”라는 표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뒤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그에게 커밍아웃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를 걸고 던지는 질문이었다.

교회 안에서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감춘 채 가슴 졸이며 예배드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있다.

그 청소년과 청년의 수만큼 자녀의 이야기를 비밀로 간직한 채 신앙생활을 이어 가는 부모와 보호자들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과 자신이 배워 온 신앙을 어떻게 함께 붙들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혼란과 두려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청년 사역을 하면서 나는 교회 안에서 숨죽여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자녀가 퀴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인교회 안에서 환영받지 못할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조용히 미국 교회를 찾아간 부모들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결국 교회를 떠났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신앙에 관해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깊은 의심과 분노를 마음속에 묻어 둔 채 겉으로만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나 묻어 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

“내 아이도 하나님의 자녀일까?”

“있는 모습 그대로 교회에 가도 될까?”

“내가 진실을 말하면 하나님과 교회와 가족을 잃게 될까?”

이 질문들은 교회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의 침묵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 된다.

그렇다면 교회와 목회자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오랫동안 이 질문을 품고 살아온 나의 결론은 단순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백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까지 미치는가?

그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과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신학적 논쟁에 앞서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누구도 자신의 의로움과 완전함을 증명한 뒤에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모든 신학적 질문을 해결한 뒤에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논의는 이 고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인간의 성과 결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교회의 직분과 질서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각자는 성경과 신학적 전통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그 논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더욱 확고히 할 것이다. 그 신학적 논의는 다른 기회에 충분히 다룰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존재를 하나의 논쟁거리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모든 신학적 질문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질문을 다루기 전에 먼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두려움보다 먼저 와야 한다.

환대가 질문보다 먼저 와야 한다.

경청이 판단보다 먼저 와야 한다.

관계가 논쟁보다 먼저 와야 한다.

PC(USA)는 어떻게 동성결혼과 성소수자의 안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었을까?

오늘은 성서 해석에 관한 모든 논쟁을 정리하기보다, 미국의 대표적인 장로교단 가운데 하나인 Presbyterian Church (U.S.A.), 곧 PC(USA)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성소수자의 안수 가능성을 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 역사에 들어가기 전에, 한국 장로교회와 PC(USA)의 관계를 먼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같은 선교의 뿌리, 그러나 서로 달라진 신학적 여정

현재의 PC(USA)는 과거 미국 남장로교단 하나가 이름을 바꾸어 이어진 교단이 아니다.

현재의 교단은 1983년 남부 계열의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 즉 PCUS와 북부 계열의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즉 UPCUSA가 다시 통합하면서 형성되었다. 이 두 교단과 그 전신들은 남북전쟁 무렵 분열한 뒤 122년 만에 재결합했다.

한국 초기 장로교 선교에도 두 전통이 모두 참여했다.

언더우드는 미국 북장로교 계열인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선교부가 파송한 선교사였다. 남장로교인 PCUS는 1892년 한국에 첫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W. D. Reynolds 부부, 유진 벨 등이 포함된 일곱 명의 ‘Pioneer Band’가 그해 한국으로 출발했고, 남장로교 선교부는 북장로교 선교사들과 협력하면서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 남서부 지역에서 교회, 학교, 병원과 신학교를 세우는 데 참여했다.

따라서 현재의 PC(USA)가 미국 북장로교와 남장로교의 역사적 전통을 모두 계승한다는 설명은 맞다.

그러나 역사적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오늘날의 신학적 입장까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해방과 분단, 전쟁, 여러 차례의 교단 분열을 거치며 독자적인 신학적·제도적 길을 걸었다. 미국의 PC(USA) 역시 1983년 통합 이후 여성 안수, 인종 정의, 성소수자 포용, 사회적 증언과 같은 문제를 둘러싸고 자체적인 논쟁과 결정을 이어 왔다.

따라서 “과거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 교단”이라는 역사적 연결과 “오늘날 동일한 신학적 입장을 가진 교단”이라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뿌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이후의 신학적 궤적은 서로 다르게 발전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PC(USA)의 성소수자 포용은 어느 총회에서 갑자기 결정된 일이 아니다.

1974년, 당시 총회에서 David Sindt 목사는 “여기 다른 게이도 있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를 들어 올렸다. 그 사건은 교단 안에서 자신을 숨기고 있던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후 여러 옹호 단체들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교단의 제도가 곧바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1991년 인간의 성에 관한 연구보고서는 정의와 사랑을 중심으로 한 성윤리와 성소수자의 온전한 포용을 제안했지만 총회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오히려 1996년 총회에서는 흔히 “fidelity and chastity”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조항은 교회 직분자가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결혼 안에서 신의를 지키거나, 미혼일 경우 정결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듬해 전국 노회들의 비준을 거쳐 교단 헌법에 포함되면서, 동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목사와 장로, 집사로 안수받기 어려워졌다.

이후 1997년과 2001년, 2008년 총회는 이 조항을 삭제하거나 변경하려 했다. 그러나 장로교 정치에서는 총회가 헌법 개정안을 승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국 노회의 과반수가 이를 비준해야 한다.

세 차례의 시도는 모두 충분한 노회 승인을 얻지 못했다.

변화는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멈추기도 했다. 교회들이 탈퇴했고, 공동체가 갈라졌으며, 총회와 노회에서는 같은 논쟁이 여러 해 동안 반복되었다.

그러는 동안 실제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었다.

누군가는 목회 소명을 받았지만 안수받지 못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사역해야 했다. 누군가는 교회의 결정을 기다리다가 교회를 떠났다.

2011년, 헌법적 장벽이 제거되다

결정적인 변화는 2010년과 2011년에 이루어졌다.

2010년 제219차 총회는 기존의 “fidelity and chastity” 문구를 삭제하고 새로운 안수 기준을 제시하는 Amendment 10-A를 승인했다. 이후 전국 노회의 과반수가 개정안을 비준하면서 새로운 기준은 2011년 7월 10일부터 효력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 결정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2011년의 결정은 “LGBTQ인 사람은 누구나 자동으로 안수받을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성적 지향을 안수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거나, 모든 교회와 노회에 특정 후보자를 안수하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Amendment 10-A는 안수 후보자를 획일적인 결혼 상태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대신, 안수를 담당하는 당회와 노회가 각 후보자의 신앙과 소명, 은사와 준비 상태, 직분 수행의 적합성을 성경과 신앙고백에 따라 개별적으로 분별하도록 했다.

교인은 장로와 집사를 선출하고, 당회는 그들의 적합성을 심사한다. 목사 후보자의 경우에는 노회가 소명과 준비, 직분 수행 능력을 심사한다. 이러한 당회와 노회의 권한과 책임은 2011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달라진 것은 동성 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후보자의 소명과 은사를 살펴보기도 전에 일괄적으로 배제하던 헌법적 장벽이었다.

PC(USA)의 공식 설명은 이 변화 이후 동성 관계에 있는 사람도 집사, 장로 또는 목사 안수의 후보자로 고려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힌다. 다른 모든 안수 기준과 심사 절차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따라서 2011년 결정의 의미는 “모두를 무조건 안수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한 사람의 정체성만 보고 미리 문을 닫지 말라.
그 사람의 신앙과 삶, 소명과 은사를 직접 만나고 분별하라.

2014년과 2015년, 결혼의 문이 열리다

안수 기준의 변화 이후 결혼에 관한 논의가 이어졌다.

2014년 제221차 총회는 결혼에 관해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째,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지역에서 목회자가 자신의 신앙과 양심에 따라 동성 커플의 결혼예식을 집례할 수 있도록 하는 권위 있는 해석을 채택했다.

둘째, 교단 헌법인 《Book of Order》의 결혼에 관한 문장을 변경하는 개정안을 전국 노회에 보냈다.

개정안은 결혼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결혼은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헌신이며, 전통적으로는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헌신이다.

전국 노회의 과반수가 이 개정안을 승인하면서, 새로운 규정은 2015년에 효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결정 역시 모든 목회자에게 동성결혼을 의무적으로 집례하라고 명령한 것은 아니었다.

PC(USA)의 결혼 규정은 목회자가 결혼을 요청한 두 사람을 만나 결혼 언약에 대한 이해와 준비 상태를 판단하도록 한다. 목회자는 결혼예식을 집례할 권한이 있지만 반드시 집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당회는 교회 건물을 결혼예식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거나 거절할 권한을 가진다.

이것은 PC(USA)의 결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교단은 동성 커플의 결혼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지만, 모든 목회자와 교회가 반드시 같은 신학적 결론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동성결혼을 집례하려는 목회자의 양심도 보호하고, 집례하지 않으려는 목회자의 양심도 보호하는 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안수와 결혼에 관한 실제적인 결정에는 당회와 노회의 지역적 분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식적인 포용 정책이 마련되었지만, 그것이 모든 지역교회와 노회에서 같은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PC(USA)는 성경을 버려서 변한 것일까?

PC(USA)의 변화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교단이 성경을 버리고 시대의 문화를 따라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지만, 양쪽 모두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 장로교 전통을 근거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총회에서 한 차례 투표한다고 교단 헌법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헌법 개정안은 전국의 노회로 보내졌고, 각 노회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 토론하고 기도하고 투표했다.

어떤 개정안은 총회를 통과했지만 노회에서 부결되었다. 같은 질문이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제기되었다. 성소수자 신자와 가족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했고, 목회자와 교회들은 성경과 전통을 다시 연구했다.

결국 교단이 도달한 결론은 모든 성서 해석의 차이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특정한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그 사람을 하나님의 부르심과 교회의 직분에서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소명과 은사, 삶과 신앙을 공동체가 직접 만나고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PC(USA)의 변화는 단순히 “동성애를 받아들였다”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교단의 응답이었다.

누가 교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보일 수 있는가?

누구의 소명을 교회가 들을 것인가?

서로 다른 성경 해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한 교회 안에서 각자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목회자의 첫 번째 응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한 청년이 목회자에게 자신이 게이라고 말할 때, 그 청년은 대부분 신학 토론을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먼저 묻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제가 여기서 안전할까요?”
“제 이야기를 듣고도 저를 같은 사람으로 대해 주실 건가요?”
“제가 진실을 말하면 하나님과 교회와 가족을 잃게 될까요?”

이 질문 앞에서 목회자의 첫 번째 역할은 성경 구절을 제시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들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맡겨 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 허락 없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가 신앙과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면, 그 질문을 서둘러 끝내려 하지 말고 함께 걸어 주어야 한다.

목회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네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줘서 고마워.”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되는지는 네가 결정할 일이야.”

“지금까지 교회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듣고 싶어.”

“하나님과 신앙에 관해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자.”

신학적 견해가 서로 다르더라도 한 사람의 존엄과 안전까지 유보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보호자에게도 같은 동행이 필요하다.

자녀의 이야기를 들은 부모는 사랑과 신앙,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경험할 수 있다. 이때 교회는 부모에게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거나 “아이를 제대로 바꾸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배워 온 신학적 이해와 충돌할 때, 그 혼란과 질문을 판단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교회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더 큰 수치심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은혜 안에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시 그 청년의 질문 앞에서

“전도사님, 저 같은 사람도 교회에 와도 될까요?”

지금 다시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연하지. 그런데 ‘너 같은 사람’이 무슨 뜻이야? 너는 하나님을 찾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공동체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잖아. 우리 모두와 똑같이.”

“네 이야기를 숨기지 않아도 돼. 모든 질문에 당장 답을 찾지 않아도 돼. 여기서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알아 가면 돼.”

교회는 이미 모든 답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증명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고, 예배하고, 질문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누군가 교회 문 앞에서 “저 같은 사람도 들어가도 됩니까?”라고 물을 때, 교회의 대답은 분명해야 한다.

“먼저 자신을 바꾸고 오라”가 아니라,

“우리가 네 정체성을 판단한 뒤 알려 주겠다”가 아니라,

“우리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면 있어도 된다”가 아니라,

“들어오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 걸어가자.”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는 것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는 말은 내가 신학 논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적인 사람이 보수적인 사람을 이긴다는 뜻도 아니다. 한 교단이 다른 교단보다 더 의롭다는 선언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는 것은 두려움이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교회의 배제가 하나님의 은혜보다 강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청년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저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 교회가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교회는 그에게 말해야 한다.

“너는 문제가 아니다.”

“너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너는 우리가 허락해야만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보이고 있는 사람이다.”

교회의 미래는 모든 사람이 같은 해석과 같은 경험, 같은 목소리를 갖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을 감추지 않은 채 한 식탁에 앉고,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가 세워 놓은 경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배우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고백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믿는 교회라면 누군가의 “저 같은 사람도 교회에 와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바로 너도 올 수 있어. 아니, 너도 이미 이 교회의 한 부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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