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느림보 비주류입니다
김밥연구소 김 소장 이야기

Sam Kim
Oct 26, 2026
나는 느림보입니다. 모든 것이 조금 느립니다. 무엇 하나 단번에 이루어 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대학 입시도 그랬습니다.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하고 몇 차례 추가 합격을 거쳐 겨우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누군가는 농담으로 제가 대학교 후문을 닫고 들어간 사람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느림은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나는 다시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지원했지만 낙방했고, 결국 같은 해 신학대학 학부에 편입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마치고 목회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길은 달랐습니다. 일반대학 4년, 군 복무 8년, 신학대학 학부 편입 2년, 미국에서 신학대학원 6년. 그렇게 총 2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7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나는 13년이나 더 걸려 도착했으니, 이 바닥에서 한 느림 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듯합니다.
물론 인생이 꼭 정해진 시간표대로 흘러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그것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고, 늦게 도착하고, 때로는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삶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곧장 이어지는 길이 내게는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느림보인데다 비주류이기도 합니다.

남들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인생도 답답할 터인데, 그 여정마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세를 따르기보다 비주류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지 않고, 무엇을 그렇게 유난스럽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유난을 떤다며 콧웃음을 치기도 했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것은 오히려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군 시절 겪었던 멸시와 천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습니다. 서른한 살에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신학교 학장에게는 '어중이떠중이'라는 조롱까지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다른 신학생들처럼 교회 사역에만 전념하기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안정적인 교회 사역보다는 교회 개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풀타임 학생에, 교회 개척, 샌드위치 가게 파트타임, 출장 스냅 포토그라퍼 동시에 3~4개의 잡을 해야 했습니다. 주류 백인 교회 보다 아프리카 이민자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도들이 세운 교회에서 한 사람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한인교회 담임목사의 길과는 인연이 없었는지, 대만 이민자들이 세운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이전에 익숙했던 것과는 다른 신앙의 언어와 교회 문화를 만났습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사람들이 살아온 역사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신앙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배웠습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다른 공동체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그들의 삶과 신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내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신앙의 기준과 목회자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의도적으로 비주류를 선택한 순간도 있었지만, 때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과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 뒤섞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느림보 비주류입니다.
주변부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느림보 비주류로 살아온 경험은 나를 자연스럽게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1), 탈식민주의 신학(Postcolonial Theology), 해방신학(Liberation Theology), 사회복음(Social Gospel), 생태신학 (Eco Theology), 달릿 신학(Dalit Theology), 흑인신학(Black Theology), 민중신학(Minjung Theology), 퀴어 신학(Queer Theology)으로 안내했습니다.
이 신학들을 통해 나는 이전에는 충분히 듣지 못했던 이야기와 목소리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류에서 비껴나 있다는 것은 때로 외롭고 불편한 일이지만, 동시에 주류의 언어와 기준을 다른 자리에서 바라볼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중심에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던 것들이 주변부에서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누가 중심을 정했을까요? 누구의 경험이 보편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누구의 경험은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될까요? 누구의 목소리가 신학이 되고, 누구의 이야기는 그저 개인적인 경험으로 남게 될까요?
주변부에서 살아온 경험은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했습니다.
신학 역시 이러한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학은 특정한 문화와 언어, 역사적 경험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물론 그 전통에는 귀중한 신앙의 유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충분히 들리지 못한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식민 지배를 경험한 사람들, 인종차별과 계급적 억압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 카스트 제도로 인해 차별받아 온 사람들, 가난과 정치적 억압 속에서 신앙을 지켜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이해해 왔습니다.
그들의 신학은 기존 신학의 내용을 조금 더 다양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신학적 질문 자체를 다시 묻게 합니다. 예를 들어 구원이 개인의 영혼에 관한 문제이기만 한 것인지, 아니면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과도 관계되는지 묻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친절을 넘어 불의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책임까지 포함하는지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고백이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살펴봅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내가 믿어 온 복음을 버리게 하기보다, 오히려 그 복음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비주류의 삶을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의 경험이 다른 이들의 경험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내가 경험한 소외와 경계의 삶은, 이전에는 들으려 하지 않았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비주류의 경험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대신할 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를 들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신학자 이정용(Jung Young Lee)은 그의 저서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2(1995)에서 주변성(Marginality)을 단순히 중심에서 배제된 상태로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변부의 경험을 '사이에서 살아가기(In-Between)', '양쪽 모두에 속하기(In-Both)', 그리고 '기존의 경계를 넘어가기(In-Beyond)'라는 관점으로 확장합니다.

주변부에 있다는 것은 반드시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한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두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연결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이정용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변부에 있던 사람이 중심부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심과 주변이라는 기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주변부에서 새로운 공동체와 신학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나의 신앙적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더 이상 중심에 들어가는 것만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변부에 머무는 것을 미화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주변부의 삶에는 분명 고통과 배제,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느냐일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내게 주변부를 단순한 사회적 위치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면, 그분은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서만 사람들을 만나신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 종교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진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공동체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정해 놓은 중심과 주변의 질서에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더 중요한 사람인지,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이러한 예수님의 삶에서 주변부를 바라보는 신앙적 이유를 발견합니다. 그렇기에 주변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단순히 사회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 내가 믿는 복음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작은 경험이라도 나만의 이야기로 남겨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듣든 듣지 않든, 필요한 이야기는 계속하려 합니다. 그 작은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과 만나고, 서로 연결되고, 마침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중심의 질서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언제나 중심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밥연구소 김 소장이 할 일

김밥연구소는 비주류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거나 충분히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들이 더 널리 들리도록 돕고 싶습니다. 주류를 둘러싼 여러 버블이 되겠습니다. 물론 작은 버블 하나로 거대한 중심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경험과 질문을 담은 버블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연결된다면 어떨까요? 그 버블들이 기존의 경계를 흔들고, 중심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버블은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경험과 목소리들이 만나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내는 작은 공간입니다.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작은 목소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소리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연결될 때,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이야기가 공적인 대화의 일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밥연구소는 그런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DEI, 탈식민주의 신학, 해방신학, 생태신학, 사회복음, 달릿 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퀴어신학 등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신앙의 언어와 관습을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서로 다른 신앙의 경험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면서도 누군가를 공동체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정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그것을 우리의 일상과 사회구조 속에서 실천하는 일에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교회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 역시 익숙한 신앙의 언어에 머물러 있었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관습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긴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보지 못하는 편견과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 역시 여전히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김밥연구소의 콘텐츠는 생소하지만 우리 신앙에 필요한 이야기, 익숙한 믿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고 넓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채워 가겠습니다. 특히 거대한 신학적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학자들의 책 속에 머물러 있는 신학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가정과 교회, 일터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습니다.
때로는 성경을 새롭게 읽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교회 안에서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주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민자의 삶과 신앙, 인종과 문화의 차이, 성별과 정체성, 경제적 불평등, 생태적 책임, 그리고 교회가 사회적 정의를 위해 감당해야 할 역할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느림보입니다. 앞으로도 남들보다 늦게 배우고, 늦게 이해하고, 늦게 도착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여전히 중심에 서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빠르게 지나갔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경험하지 못했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고, 주변부에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던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중심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걷는 길에서 누구와 함께 걷고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도 느림보 비주류로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밥연구소에서 그 느린 걸음으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하나씩 나누려 합니다.
각주
- 1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약자입니다. 이 글에서는 DEI를 '다양성·형평성·포용성'으로 번역합니다. 다양성은 서로 다른 정체성·경험·배경을 인정하는 것이고, 형평성은 서로 다른 출발점과 구조적 장벽을 고려하여 공정한 기회와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며, 포용성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
- 2이정용(Jung Young Lee), Marginality: The Key to Multicultural Theology(1995). 이정용은 주변성을 단순한 배제나 소외의 상태를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세계의 경계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관계를 형성하는 창조적 가능성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는 In-Between, In-Both, In-Beyond라는 개념을 통해 주변부의 경험이 기존의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신학적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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